5·18 희생자 시신 수습하고, 자신의 성폭력 피해 증언한 성수남씨 별세 [플랫]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돌본 데 이어 자신이 겪은 국가폭력의 피해를 증언했던 성수남씨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2025년 11월 7일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의 회원 성수남씨가 7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첫 재판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후 피해자를 위한 진실과 치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성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다친 광주시민을 돕고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시 광주기독병원 전속 사진사였던 남편 고 김영복씨와 함께 5·18의 참상을 외부에 알리는 데도 힘을 보탰다. 부부는 김씨가 촬영한 현장 사진을 관공서와 종교단체에 비밀리에 전달하는 등 계엄군의 진압 실태를 세상에 알렸다.
그는 지난 2023년 8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당시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들의 유지를 받는 것이 사명으로 여겨졌다”라고 진술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성씨 부부는 지난 2007년 제1회 오월어머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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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는 5·18조사위 조사에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꺼냈다. 5·18조사위 ‘직권조사 사건 진상규명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성씨는 5·18 둘째 날인 1980년 5월19일 늦은 밤 금남로 일대에서 다친 시민들을 위해 구급 약품을 챙겨 집을 나섰다 계엄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직후 성씨는 강한 수치심을 느껴 스스로 오른쪽 위 가슴을 응급처치용 가위로 찌르기도 했다.
그는 5·18조사위에 “구타를 당하고 총알 파편이 몸에 들어와 마취 없이 수술하고, 성폭행까지 당했지만 그 직후에도 활동을 멈출 수 없었다”며 “당시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분들의 식어가는 몸에 손을 넣어 총알을 빼내거나 학생이 주머니에 넣고 다닌 유서를 보면서, 저 자신의 아픔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24년 8월 29일 광주광역시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 증언자 첫번째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피해사례를 듣고 있다. 정효진 기자
오랜 시간 가슴속에 묻어뒀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린 성씨는 2024년 5·18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피해자모임 ‘열매’를 결성했다. 그는 그해 9월 회원들과 국회를 찾아 피해 사실을 직접 증언한 데 이어 12월에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윤경회 ‘열매’ 간사는 “성폭력 피해 특성에 부합하도록 5·18보상법을 개정했고 이제 그에 따른 시행령 마련을 눈앞에 둔 시점에 선생님께서 결과를 보지 못하고 떠나셨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성씨는 생전 옛 전남도청에 5·18 행방불명 희생자들을 위한 별도의 추모공간을 마련하기를 바랐다. 그는 5·18조사위에 “광주 곳곳에 5·18을 기념하는 장소가 있지만 현재까지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하고, 그분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고 교육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며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주먹밥도 먹어보지 못할 정도로 싸운 사람들에게 위령제를 정성스럽게 해줬으면 한다. 그곳에 꽃 한 송이를 놓고 싶다”고 말했다.
성씨는 지난 8월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5·18 당시 찍은 사진 654장에 대한 기록물 기증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윤 간사는 “선생님은 이제야 원이 풀렸다고 말씀하셨는데 보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고인의 빈소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만평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일 오전 7시50분이다. 고인은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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