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러 재벌 2명 제재 해제…프랑스·룩셈부르크 ‘국익 거래’ 논란
유럽연합(EU)이 러시아 재벌 2명을 대러 제재 명단에서 제외하는 대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과 연루된 약 3000명의 개인·기관에 대한 제재를 3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대러시아 제재를 유지하기 위한 막판 타협이었지만, 회원국이 자국 이해관계를 앞세워 유럽연합 공동 제재를 협상 카드로 활용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2일(현지시각) 아에프페(AF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 27개국은 제재 명단 갱신 시한을 앞두고 수일간 협상을 벌인 끝에 러시아 재벌 알리셰르 우스마노프와 미하일 프리드먼을 명단에서 빼는 절충안을 마련해 합의했다. 유럽연합의 제재 연장에는 회원국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프랑스와 룩셈부르크가 동의를 보류하면서 합의에 실패할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등을 포함한 제재 명단 전체가 만료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프랑스는 이달 초 ‘국가안보’를 이유로 러시아계 우즈베키스탄인 우스마노프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로이터는 지난 15일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해 프랑스가 아제르바이잔에 구금된 프랑스 국적자들의 석방을 위한 협상과 우스마노프 문제를 연결했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공식 설명을 내놓지 않았지만, 아제르바이잔이 프랑스인 억류 문제를 지렛대로 우스마노프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룩셈부르크는 러시아계 이스라엘인 금융재벌 프리드먼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프리드먼은 자산동결과 관련해 룩셈부르크를 상대로 약 158억달러(약 21조3천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는 룩셈부르크 정부 지출 예산의 절반 가까이되는 규모여서, 룩셈부르크가 잠재적인 재정적 부담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스마노프와 프리드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뒤 유럽연합의 자산동결과 입국금지 제재 대상에 올랐다. 우스마노프는 크렘린과의 긴밀한 관계가, 프리드먼은 러시아의 주요 은행권 및 재계와의 연결이 각각 제재 근거로 제시됐다.
이번 합의에 따라 제재 명단의 통상 갱신 주기는 6개월에서 36개월로 늘어났다. 유럽연합은 이를 통해 앞으로 3년 동안 반복적인 만장일치 협상으로 전체 제재 체계가 볼모로 잡히는 위험을 줄이려 했다. 유럽연합 의장국 아일랜드는 제재의 ‘지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비판은 거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와 룩셈부르크가 두 재벌의 제재 해제를 위해 유럽연합 전체의 대러 제재 갱신을 사실상 인질로 삼으면서 제재가 우크라이나를 위한 공동의 희생이라는 기존 원칙을 훼손했다고 평가했다. 또 여러 외교관을 인용해 “향후 회원국들이 자국의 경제·정치적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제재에는 동의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에스토니아의 마르구스 차흐크나 외교장관은 이날 프랑스가 충분한 설명 없이 “제재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제시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 기반시설을 공격하는 “최악의 시점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도 강하게 반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제재 명단에 우연히 오른 이름은 하나도 없다. 각각의 이름은 이 전쟁이 왜 시작됐고 지금까지 계속되는지를 보여준다”고 썼다. 안드리 시비하 외교장관은 이번 결정을 “수치스럽고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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