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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안 만나” 미국 20대 여성들…클럽룩 입고 몰려가는 곳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Kyunghyang Shinmun ·
“남자 안 만나” 미국 20대 여성들…클럽룩 입고 몰려가는 곳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지난달 미국 뉴저지주 레드뱅크의 한 공연장 앞. 마치 클럽에 가듯 원피스에 부츠를 신고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성들이 친구를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기 가수 공연을 기다리는 팬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은 공연 티켓만이 아니었다. 성경이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일(현지시간) 이곳에 모인 여성들이 미국의 기독교 팟캐스트 ‘걸스 곤 바이블(Girls Gone Bible)’의 라이브 투어를 보기 위해 모였다고 전했다. 대부분 30세 미만이었다. 이들은 기도하고 찬양하고 신앙 간증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걸스 곤 바이블’은 기존의 종교 콘텐츠와는 거리가 있다. 2023년 시작한 이 팟캐스트는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00만명을 넘었고, 스포티파이 종교·영성 분야에서 42위에 올랐다. 올해 4월 시작한 ‘리바이벌’ 투어에서는 음악과 기도, 종교적 간증을 결합해 미국 동부와 앨라배마·테네시·캘리포니아 등을 돌고 있다.

진행자는 앤절라 할릴리(30)와 아리엘 리츠마(36)다. 두 사람 모두 어릴 때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해온 인물은 아니다. 두 사람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기독교인이 됐다. 할릴리는 불안과 알코올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2019년 불안 발작을 겪으며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고, 리츠마는 힘든 이별을 겪은 뒤 우연히 교회에 들어갔다가 신앙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젊은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전통적인 종교 프로그램과 사뭇 다르다. ‘여자들끼리 수다’를 뜻하는 ‘걸리 컨보(girly convo)’라는 표현을 내세우며 연애, 금주, 불안, 자존감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세속적인 여성 팟캐스트 ‘콜 허 대디’에서 다룰 법한 소재다. 그러면서 그 안에 성경과 기도, 금욕과 신앙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

할릴리는 혼전 성관계를 ‘악마적 억압’이라면서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섹시하다는 인정을 받으려 하지 않는 삶을 ‘완전한 순결’”이라고 했다. 이런 메시지가 미국 젊은 여성들에게 완전히 낯선 것도 아니다. 종교 여부와 관계없이 최근 미국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남성과의 연애나 성관계를 한동안 끊는 ‘보이 소버(boy sober)’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좋지 않은 데이트 경험이나 남성 관계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 자발적으로 금욕을 선택하는 현상이다. ‘걸스 곤 바이블’이 말하는 혼전순결 역시 이런 흐름과 맞물려 일부 여성들에게는 억압이라기보다 자기 통제나 자기 보호의 언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가디언은 이들을 ‘보수적인 여성들을 위한 콜 허 대디’에 비유했다. 종교 이야기를 앞세워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기보다, 먼저 연애와 정신건강처럼 익숙한 주제로 말을 건 뒤 신앙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공연장을 찾은 여성들의 관심사도 단순히 종교만은 아니었다. 틱톡을 통해 ‘걸스 곤 바이블’을 처음 접한 대학생 그레이스 콜루치(22)는 가디언에 “아직 남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다”면서 “혼전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함께 공연장을 찾은 또 다른 대학생 테일러 가비(22) 역시 팟캐스트의 연애 조언을 좋아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특히 진행자들이 불안과 스트레스, 번아웃 등 정신건강 문제를 자신의 경험과 함께 이야기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콜루치는 “그들이 겪는 일이 우리와 비슷하고, 무겁지 않으면서 재미있고 쉽게 배울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공연장에 온 여성들은 종교 행사를 찾는 모습이라기보다 좋아하는 콘텐츠의 라이브 공연을 보러 온 팬들처럼 보였다.

20대만 공연장을 찾은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 앨리시아 레이시스(30)도 공연 전 가디언과 만나 진행자들이 다른 보수 성향 팟캐스터들처럼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멜리사(58)는 “아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진 여성을 만났으면 좋겠다”면서 아들을 데리고 오고 싶다고 했다.

물론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모두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 부분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여성관에 가깝다. 두 진행자는 결혼 전 성관계를 하지 않는 ‘순결’을 강조했다. 할릴리는 과거 성관계를 통해 남성에게 인정받으려 했던 삶에서 벗어난 것이 큰 기쁨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매우 현대적이다. 무겁고 근엄한 설교보다는 친구끼리 수다를 떠는 듯한 말투를 사용한다. 진행자 자신들도 완벽한 신앙인이 아니라 실수와 방황을 경험한 ‘평범한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 종교사를 연구하는 켈시 핸슨 우드러프 웨슬리언대 연구원은 가디언에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개종 이야기를 좋아한다”면서 “과거의 방황과 개인적인 위기를 거쳐 신앙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그 사람의 신앙에 진정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은 최근 미국 젊은 세대의 종교 콘텐츠 소비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올해 3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종교 관련 오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사람 가운데 37%는 이런 콘텐츠가 자신의 종교·영적 생활에 매우 또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답했다. 종교 콘텐츠는 이제 라디오뿐 아니라 팟캐스트 등 주문형 오디오를 통해 소비되고 있다.

가디언은 특히 젊은 여성들이 정신적인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이런 콘텐츠에 끌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진행자들은 불안, 섭식 문제, 자살 충동 등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나도 그랬다”는 방식으로 청취자에게 다가간다. 실제 공연장에 온 여성들도 신학적 논쟁보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 진행자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듣는 데 의미를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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