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무장공비 소탕 뒤 30년간 악몽…참전 소령 행정심판 제기
(강릉=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매년 9월만 되면 마치 전투 현장에 있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듭니다. 이 악몽은 끔찍한 전투의 참상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결코 알 수 없습니다."
18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1996년 9월 18일 강릉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 투입됐던 이상호(57) 육군 예비역 소령(당시 11사단 13연대 9중대장·대위)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당시 전투 수행 과정에서 입은 상이로 인정해달라며 최근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이 예비역 소령은 침투사건 발생 나흘째인 그해 9월 21일 중대원 87명과 강릉 칠성산 종심 작전에 투입돼 지형 분석과 야간 매복, 도주로 차단 등 작전 전반을 지휘했다.
추위를 견디며 어둠 속에서 온 신경을 집중해 밤을 지새우던 이 예비역 소령과 부대원들은 9월 22일 새벽 약 5m 떨어진 바위 뒤편에서 민간인으로 보이는 40대 추정 남성을 발견했다.
당시는 송이 채취 시기라 산에서 주민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고, 남성의 옷차림도 남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얼핏 무장공비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서 있는 남성의 뒤쪽으로 소총의 소염기(총구에 달린 화염을 줄이는 장치)가 15㎝가량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고, 이를 확인한 장병들은 그 즉시 무장공비와 교전을 벌였다.
"적이 쏜 탄에 아군 병사의 머리가 관통해 피와 골수가 흐르고, 무장공비는 수류탄 폭발로 두 팔이 절단돼 주변에는 살점이 나뒹굴었습니다. 헬기 소리만 들으면 그때의 참혹한 광경이 떠올라요. 아직도 산악지형을 피하고 군 관련 뉴스도 끝까지 보지 못합니다."
이 예비역 소령은 "무장공비를 사살한 뒤 장비를 수거하라는 명령을 받고 시신에서 옷과 장비를 직접 수습해야 했다"며 힘들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군 생활의 첫 번째 원칙은 데리고 있는 부하들을 건강하게 부모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며 "명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했지만, 부하를 부모님께 돌려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예비역 소령은 당시 군에서는 지휘관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진급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술에 의지하며 홀로 견뎌낸 날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 예비역 소령은 PTSD 증상과 무장공비 잠수함 침투사건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지난해 12월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훈 당국은 지난 5월 보훈심사위원회 개별의학 자문 등을 근거로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 요건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통보했다.
사건 이후 약 29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기록이 없는 데다 현재 증상이 전투 후유증이 아닌 다른 심리적·성격적 요인 등에 따른 것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참고 견디는 것이 군인의 자세라고 생각했고 가족이 생긴 뒤에는 가장으로서 버티며 살아왔다"며 "진료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전투와의 인과성이 없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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