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강약약강’의 대명사, 매국노 이완용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한 유명 연예인의 증조부를 두고 친일 논란이 뜨겁습니다. ‘매국노’ 이완용(1858∼1926·사진)을 치료해 목숨을 건지게 한 인물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이완용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금 뜻밖의 이력이 드러납니다. 경기 광주시에서 태어난 이완용은 25세에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습니다.
1887년 미국으로 건너가 당대 누구보다 먼저 근대 문물을 접했고, 귀국 후에는 대표적인 친미파 관료로 활동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한때 서재필, 윤치호 등과 함께 자주독립과 근대적 개혁을 내세운 독립협회에서 활동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을 좌우한 것은 신념보다 힘의 향방과 자신의 안위였습니다. 국제 정세가 바뀔 때마다 그는 풍향계처럼 움직였습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친미파로, 러시아가 득세하면 친러파로 돌아섰습니다.
1905년 러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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