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에서 '브레인'으로, 김민석 그는 누구인가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의원이 17일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의 34년 정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최연소 국회의원(1996년), 최연소 집권 여당 서울시장 후보(2002년)에서 '18년 야인'을 거쳐 다시 집권 여당의 당대표까지, 부침의 연속이었다. '386 스타'에서 정치적 광야로1964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태어난 김민석은 198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하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학련 초대 의장을 맡으며 학생운동을 주도하면서 그의 학창시절은 강제 연행과 구금 등으로 점철됐다. 훗날 그는 서대문구치소와 안양·청주 등지의 독방 생활 시절 맨바닥에 송판을 깔고 겨울을 나며 골병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국회 입성까지는 한 번의 실패가 필요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영등포을에 출마해 260표 차로 낙선했지만, 4년 뒤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2000년에는 득표율 60%를 넘는 압승으로 재선에 성공하며 386세대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국제사회에서 '아시아의 젊은 지도자'와 '미래의 세계 지도자'로 선정되면서 차세대 지도자라는 기대도 커졌다. 그러나 절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지만 낙선했고, 대선 국면에서는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고 정몽준 캠프에 합류하며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이후 복당했지만 선거마다 낙선했고, 2004년 총선에서는 3위로 밀려났다. 이 시기의 낙인의 효과는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한 측근은 "20년도 더 지난 선택이 지금까지도 그의 정치적 한계를 규정하는 꼬리표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런 그에게 "오래 정치할 사람이니 퇴수(退修)를 잘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퇴수는 물러나 조용히 자신을 닦는다는 뜻이다. 김민석은 스스로를 "차세대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지만 여러 차례 정치적 고비를 넘기며 풍운아가 됐다"고 돌아본 바 있다. 야인으로 지내며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과 칭화대, 럿거스대에서 공부했고 뉴저지주 변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이 시기의 기록은 훗날 저서 '퇴수일기'에 담겼다. 그가 국회로 복귀한 때는 2020년.
18년 만이었다. 보건복지위원장을 맡아 코로나19 대응과 '넥스트 팬데믹' 대비를 주도했고, 'K-바이오 도약 10대 과제'를 통해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유치를 이끌었다. 이어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돼 오늘에 이르게 됐다.
18년 야인 거쳐 이재명의 '기획형 브레인'으로 김민석의 정치적 재기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이재명 대통령이다. 여권 권력 지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의 신임이 그를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배경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대선 직후 기존 좌장 역할을 하던 정성호 의원이 역할을 내려놓으면서 이 대통령이 김민석을 새로운 좌장으로 발탁했다고 한다. 이후 김민석은 이재명 대표 핵심 그룹에서 주축으로 활동하며 당 운영과 대선 준비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강점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속도'다. 복잡한 상황을 빠르게 규정하고 메시지와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측근들은 그의 업무 스타일을 "10개를 주문하면 12개를 만들어낸다. 빨리 만들어서 딱 발표한다"는 말로 정리했다. 여권에서 그를 '기획형 브레인'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상황을 규정하고 메시지를 만드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에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차이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무엇보다 취약점으로 꼽히는 것은 당내 기반이다.
10여 년 동안 유튜브와 강연 등을 통해 민주당원들과 직접 접촉해온 정청래 후보와 비교하면 김민석의 조직력과 친화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이런 차이가 드러났다. 김민석은 호남을 제외한 모든 권역의 권리당원 표심에서 정청래 후보와의 격차를 뚜렷하게 벌리지 못했다. 정치적 내공과 기획력만으로 당대표에 올랐지만, 당원과 조직을 장악하는 힘까지 갖췄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풍운아'의 귀환, 이제는 당내 기반 기획하고 규정하고 빠르게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당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당원과 조직을 붙잡고, 반대편까지 설득하며, 끝까지 밀어붙여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학생운동가에서 국무총리를 거쳐 당대표까지.
40년을 돌아 다시 정치의 정점에 선 김민석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퇴수'가 아니라, 그동안 상대적으로 갖지 못했던 '기반'을 만드는 일일 수 있다.
이 요약은 매체의 공개 피드에서 5News가 수집한 것입니다. 전체 맥락을 포함한 전체 기사는 www.nocutnews.co.kr에 있습니다 — 콘텐츠 저작권은 Nocut News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