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81] 김일성이 위험했던 순간
1956년 8월 27일 나는 평양 거리를 걷는다.
3일 뒤 이곳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층에서 이른바 ‘8월 종파사건(8월 전원회의 사건)’이 터질 테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예상 못 하는 듯 세상은 잠잠하다.
6·25전쟁 휴전 이후 북한은 김일성 주도하에 중공업 우선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경공업은 등한시돼 소비재가 부족해져 인민들의 불만이 고조됐고, 점점 더 해가는 ‘김일성 개인 숭배’는 노동당 내 반발 기운을 양성했다. 마침 1956년 2월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쇼프가, 1953년 사망한 스탈린의 생전 독재와 그에 대한 개인 숭배를 전면 비판한 것이 공산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에 북한 소련파와 연안파 중심의 반(反)김일성 연합 세력은, 김일성이 경제 개발 자금 원조 요청을 위해 1956년 6월부터 소련과 동구권을 방문하던 사이 정권 교체를 모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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