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1990년대생이 말한다, 결혼이라는 ‘보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실직한 가장이 재취업해 가정을 복구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속 가장 만수는 실직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자기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CJ ENM 제공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옛 동화의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암시하는 것은 결혼이다. 미혼 시절의 모험과 역경은 결혼과 함께 모두 사라지고, 이제 천국에 온 듯한 영원한 행복이 이어진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쏟아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목표는 커플 매칭이다. 출연 이후 ‘현커’(현실 커플)가 된 이들이 실제로 결혼했다는 소식은 연예 매체를 통해 전해진다. 사탕 발린 예능이 진지한 다큐멘터리가 된 듯 시청자들은 흥미로워한다.
정말 결혼은 청년기의 모든 고난과 방황에 종지부를 찍는 최종 해결책일까. 태어나서 교육받고 직장을 가지고 결국 결혼에 이르지 못하면 어른으로서의 ‘1인분’을 못하는 걸까. 젊은 문화인류학 연구자 안희제는 자신과 같은 1990년대생 청년 9명을 만나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머뭇대는 지점을 포착하고 말하지 않은 것을 상상했다.
저자가 만난 청년들은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여기는 낭만적 관점만을 고수하진 않았다. 사회복지사, 변호사, 프리랜서, 구직자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이뤄진 인터뷰이들은 결혼의 현실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결혼을 언급할 때 ‘사랑’보다 더 많이 나온 단어는 ‘안정’이었다. 결혼이란 언제 휘발될지 모르는 취약한 연애 감정에 대한 법적 구속이자, 부동산 등 경제적 비용을 관리하기 위한 경제적 선택이며, ‘정상적’인 삶의 최저선이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단순히 어떤 사랑, 연애의 감정으로 지속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혼인신고가 필요하다는 이유도 (…) 그 제도적 구속이 묶어주는 안정감이 세상에 많지 않잖아.” “‘유부남이에요’라는 대답을 하고 싶지, ‘아 저희 사실혼이에요’ 이러면 이상해.” 이들에게 결혼은 부부 사이의 책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보험’ 같은 것이었다. 저자는 청년들의 대답에서 “결혼이 하는 일은 사랑을 지키는 것보다 안정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읽는다.
다만 저자는 “결혼이 안정의 가장 효율적인 장치인 이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혼이 특정한 형태의 관계만을 안정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때문” 아니냐고 묻는다. 일종의 순환논증이 ‘결혼’과 ‘안정’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둘러싼 고정관념이 강요될 때 문제가 불거진다. 예를 들어 “제가 인정하거나 제가 인정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여성이 서른다섯 넘으면 결혼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같은 대답이다. 인터뷰이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기준이 자신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지 못한다. 결혼에 연루되는 성별 고정관념도 그렇다. 남성의 경우 결혼은 한 가정을 먹여 살릴 돈을 벌어오는 가장이 되는 일이며, 결혼하지 못한 사람은 ‘남성’이지만 ‘남자’는 아니다. 남편이 아내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남성에게는 자격지심을, 여성에게는 남성을 압도하지 않을 정도로만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미묘한 입장을 강요한다. 과거의 산업화 시대에조차 남성이 홀로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한 가정을 부양할 수 있는 가장으로서 남성에 대한 요구는 특히 결혼을 중심으로 여전히 강고하다”.
결혼은 소득·재산·주거의 문제를 아우르는 경제적 안정, 파트너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관계적 안정, 스스로 생각하는 자격조건을 채웠다고 여기게 하는 심리적 안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수단은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특수한 시대적, 지역적, 경제적 발명인 핵가족을 동물적 본능의 차원으로 이해하게 하는 이유는 지금 한국에서 핵가족만이 임신-출산-육아, 그리고 이것 너머 생애 전반의 경제적, 관계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성하는 유일한 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단은 목적일 수 없지만, 결혼은 목적이 됨으로써 인식의 도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철학자 에바 페더 키테이의 말을 빌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쓰면서 상대가 주어진 조건 안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하고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피어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를 피어나게 했던 이들이 결혼과 동시에 무언가를 체념한다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만약 “결혼을 통해 이룬 가족 안에서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남은 모든 삶을 바로 그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강요되거나,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고 선전되는 가족이 정작 사회를 구성하는 무수한 연결들로부터 가족을 도려”낸다면 결혼이라는 수단의 효능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저자가 결혼 제도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잇단 투병과 사망의 와중에 큰 힘이 되어준 남성과 결혼을 결심한 사례, 자신의 투병·학업·취업 과정에서 ‘드라이브’를 걸어준 남성과 결혼하기로 한 사례 등은 ‘자연스러운 방향’이었다고 본다. 다만 이들도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이 필요했을 뿐, 결혼 자체를 중시하진 않았다.
저자 주변의 구체적인 사례로 출발하지만, 주디스 버틀러와 에바 일루즈의 페미니즘·사회학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고 한강·임솔아의 문학과 박찬욱·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까지 폭넓게 끌어온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이 보여준 결혼에 대한 인식의 생생함에 비해, “결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안정과 믿음”이나 “다른 관계들과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관계의 틀”은 이론적으로만 제시됐다는 인상도 든다. 저자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대안적 관계와 제도에 대한 사회적 상상과 실천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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