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88] ‘마녀사냥’의 중독성
1793년 10월 15일 나는, 프랑스대혁명이 4년 남짓 진행 중인 파리의 ‘혁명 광장(1795년부터는 콩코르드 광장)’에 서 있다. 내일 16일,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바로 이 자리에서 기요틴(단두대)으로 처형될 것이다. 남편이 그렇게 목이 잘린 지 약 9개월 만이다. 이 ‘대살육 피바다 혁명’은 아직 몇 해가 더 남았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 마리는 14세에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됐다. 프로이센에 위협받던 오스트리아는 앙숙이던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싶었고, 프랑스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가 필요했다. 프랑스 국민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적국에서 시집온 ‘오스트리아년’으로 여겼다. 이전 국왕들의 실정과 전쟁에서 비롯된 재정 위기 등에 대한 국민 분노도 엉뚱하게 그녀가 다 뒤집어썼다. 길 가다가 넘어져도 왕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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