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울 때도 해보라” “27년이면 됐다”···지역 영화제 ‘예산삭감’ 칼바람
지난 18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8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은 침체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한 경기도 측이 당장 다음 달 개막을 앞둔 영화제에 도비로 편성한 예산을 일부 삭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불거지면서다.
“경기도 재정난으로 이런저런 위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부응해 영화제를 화려하게 꾸릴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동진 DMZ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다음 달 10일 있을 개막식을 부대행사 없이 개막작 <하제>(황윤 감독) 상영만으로 축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DMZ영화제는 DMZ(비무장지대) 인근인 경기 파주시와 고양시 일대에서 평화와 생태 등을 주제로 매년 열리는 아시아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제다. 올해 예산 40억원 중 경기도 보조금이 31억(약 77%), 파주시 보조금이 8100만원(약 2%)로 도비 의존도가 높다. 경기도 콘텐츠진흥원 경기영상위원회 주관으로 시작된 영화제는 2014년 사단법인으로 독립했지만, 그 대표자를 경기도지사가 맡는다. 사단법인의 설립·운영 및 지원에 관한 경기도 조례도 마련돼 있다.
경기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영화제 측은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 위기에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오 집행위원장은 “예산 삭감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어 선제적으로 여러 가지를 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감액 추경’을 예고했던 경기도는 19일 5465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감액하는 내용을 포함한 2026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을 경기도의회에 제출했다. 영화제 측은 “경기도 감액 금액이 당초 알려진 7700억원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아 (영화제 지원금 삭감 규모에) 변동이 있을 수 있다”며 “감액이 최소화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은 DMZ영화제만이 아니다. 지난 10일 폐막한 정동진독립영화제도 강릉시의회와 마찰을 빚었다. 시의회는 지난달 2026년 제1회 추경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영화제 지원비 2000만원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운영비 3000만원 등 영화문화 관련 예산 1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하반기에 집행되는 예산을 없앤 것으로, 이번 영화제 자체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으나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제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열렸다.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도 1만 5000여명의 관객이 영화제를 찾았다. 정동진독립영화제 제공
문제는 지자체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릴 때, 지역 영화제가 창출하는 문화적 가치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올해로 28회를 맞는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강릉을 기반으로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강릉씨네마떼끄가 자생적으로 기획해 꾸려온 영화제다. 여름밤 야외에서 무료 상영을 진행하고, 관객이 직접 좋았던 작품에 ‘동전을 던져’ 투표한 결과로 수여하는 관객상(땡그랑동전상)으로 유명하다. 2024년에는 1만4000여 명, 2025년에는 2만7000여 명, 올해는 사흘(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내내 비가 내렸는데도 1만5000여 명의 관객이 영화제를 찾았다.
강릉시의회 회의록을 보면, 일부 시의원은 ‘여름’을 상징하는 영화제를 “추울 때도 한 번 해보라”거나, “27회까지 계속적으로 지원을 받아서 해야 하냐”며 예산 삭감을 주장했다. 강릉씨네마떼끄 측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이번 심의는 공공적 가치를 살피기보다, 자립 가능성·수익성·관광객 유입 효과 등 경제적 효과 중심으로 사업을 평가하는 모습이었다”며 유감을 표했다.
강릉씨네마떼끄에서 15년을 근무한 송은지 정동진독립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은 “재정이 넉넉지 않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제가 지역에서 만들어낸 문화적 생태계에 대한 고려 없이 삭감 결정이 내려진 것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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