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북핵 위기’ 해결한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 별세
김영삼 정부 때 주한 미국대사로 활동하면서 북핵 위기 해결에 힘쓴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에모리 대학이 밝혔다. 향년 98. 1927년 아칸소주에서 태어난 레이니 전 대사는 예일대 재학 중 군에 입대, 1947년 1월 미 육군 방첩대(CIC) 요원으로 서울에 배치되면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59년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파송되어 연세대 신학과에서 강의하면서 각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다. 1977년부터 16년 동안 미국 남부 사립 에모리 대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평화·인권 연구 기관인 ‘카터 센터’를 에모리대학에 설립하는 데 주요한 구실을 했다. 총장 재직 시절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한국 정치인과 학자들을 이 대학에 초빙했다.
그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주한미국대사로 활동하면서 1차 북한 핵 위기 해결에 나섰다.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이 거론되던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해 자신의 친구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텄다. 에모리 대학은 “고인은 1994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긴장된 시기에 대사로 재직했으나,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카터 전 대통령과 협력하여 위기를 피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국대사를 마치고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외교협회 한국태스크포스 공동의장을 맡았다. 그는 은퇴 후에도 애틀랜타 한인사회와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다. 추모식은 오는 21일 애틀랜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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