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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대신 군봇···“키 왼편 10도!” 팔 셋 달린 수병, 함선 키를 잡다 [외교안보 프리즘]

Kyunghyang Shinmun ·
군인 대신 군봇···“키 왼편 10도!” 팔 셋 달린 수병, 함선 키를 잡다 [외교안보 프리즘]

지난달 23일 해군교육사령부 조함훈련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파이봇(PIBOT)’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타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군 제공

군함의 항해를 지휘하는 함교 당직사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키 왼편 10도, 110도 잡아” 지시를 복명복창한 건 사람이 아닌 조타수 로봇이었다. 조타수의 복명복창은 당직사관의 지시를 정확히 들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로봇은 함정의 핸들(타기)을 좌우로 몇 번 돌리더니 기계음을 내며 “키 왼편 10도, 110도 잡기 끝”을 외쳤다. 뱃머리를 좌측으로 10도만큼 돌린 뒤, 배의 진행 방향인 침로를 110도에 맞춰 항해하라는 지시를 이행했다는 의미였다.

지난달 23일 경남 진해의 해군교육사령부 조함훈련장. 휴머노이드 로봇 ‘파이봇’이 타기를 잡았다. 키 165cm에 몸무게 65kg인 파이봇은 이날 시뮬레이터로 진행된 해상 당직 업무 수행 로봇 전투 실험에 참가했다.

조타수는 선장이나 당직 항해사의 명령에 따라 타기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업무는 파도와 바람, 장애물에 따라 끊임없이 타기를 좌우로 조정해야 해 피로도가 높은 업무로 꼽힌다. ‘사람 승조원’의 경우 돌아가며 4시간씩 조타수 역할을 맡는다. 해군은 조타수를 로봇이 대체하면 승조원의 당직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본다.

해군이 파이봇을 도입하려는 다른 현실적 이유도 있다. 현재 해군의 간부화 함정은 20여척이다. 간부화 함정은 의무복무하는 수병이 없거나 수병 비율을 최소화한 함정을 뜻한다. 함정에 탈 현역병이 점차 줄어들면서 2023년 3월 간부화 함정이 등장했다. 해군은 파이봇이 병력자원이 줄어드는 빈틈을 점차 메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지난해 태어난 출생아 수는 25만4500명으로 올해 스무살인 2007년생(49만6822명)의 절반 수준이다. 국방부는 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기술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전장 환경이 인공지능(AI)과 드론, 로봇을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저출생 때문에 현재 같은 인력과 보병 중심의 비효율적인 군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 사이 해군교육사령부와 세종 육군보급단을 찾았다. 각 군은 병력 감소에 대비해 AI 로봇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론 AI 로봇으로 병력을 대체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달 23일 해군교육사령부 조함훈련장에서 해군 최초로 진행된 로봇 승조원 전투실험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파이봇’이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DDG) 소속 함교 당직사관의 명령에 따라 타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군 제공

전투 실험이 치러진 지난달 23일 파이봇에게는 야간 상황, 갑작스럽게 나타난 장애물, 비바람 등 악천후 과제가 주어졌다. 함정이 진해협수로에 다다랐을 때 파도가 6m 높이로 거세졌다. 파이봇은 타기를 좌우로 미세조정했다. 기상 여건에 따라 배가 흔들리자 당직사관의 기존 지시에 맞춰 뱃머리의 각도를 수정한 것이다.

전투 실험에는 이지스 구축함인 서애류성룡함 승조원들이 참가했다. 함교 당직사관, 기관 조종수, 전탐사 등 5명의 승조원이 파이봇과 함께 전방을 주시했다. 해군 승조원들은 대체로 파이봇의 성능에 만족했다. 이날 함교 당직사관이었던 서애류성룡함의 김용우 소령은 “이 정도면 사람하고 유사하고 실수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며 “실전에서 사용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눈과 팔이 각각 3개인 파이봇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거대언어모델(LMM) 기반으로 작동해 인간의 음성 지시에 따라 가운데 팔로 타기를 돌리고, 눈(카메라)으로 각도가 맞는지 확인한다. 파이봇을 만든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연구팀은 파이봇의 지시 이행 정확도를 90% 이상이라고 소개한다. 심현철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인간 조타수도 졸거나 당직사관이 사투리를 쓰면 못 알아듣는 등 실수를 한다”며 “파이봇이 당직사관의 지시를 복명복창할 때 틀리면 인간은 다시 수정해 지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봇은 원래 비행기 조종 로봇으로 개발됐다. 국내에는 로봇 조종사를 규정한 법령이 없어 함정의 조타수로 우선 투입됐다. 로봇 조종사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반면, 함정 조타수는 당직 사관의 지시를 이행하기만 하면 돼 높은 기술 수준이 필요하지 않다.

전투 실험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공학 실험을 반복해 대안을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이번 전투 실험에서 파이봇은 주변 소음이 심해 당직사관의 지시를 듣기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또 당직 사관의 명령을 들은 뒤 타기를 돌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약 5초였는데, 업무처리에 나타나는 시차 문제도 해결이 필요하다. 파이봇의 늦은 반응은 보안 문제로 인터넷 기반의 상용화된 AI를 사용하지 못한 탓이다.

심 교수는 “로컬 AI 모델을 활용한 한계가 나타난 것이지만, 기술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군 관계자는 “파이봇이 처음부터 조타수 전용으로 개발된 로봇이 아니고 아직 전투 실험 단계이기 때문에 반응 속도 개선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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