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규제 덮치는데…수출기업 10곳 중 4곳 ‘엑셀·수기’ 각자도생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해외 탄소 규제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국내 수출기업 대다수는 표준화된 플랫폼 없이 제각각 관리하거나 수기 방식에 의존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지난 4월부터 두 달여간 수출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산업단지 탄소배출 관리(MRV) 플랫폼 수요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수출기업의 99.3%가 “해외 바이어 등 고객사로부터 탄소 배출 데이터 제출을 이미 요청받았거나 받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협력사에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거나 요구할 계획”이라는 응답도 90.3%에 달했다. 탄소 데이터 관리가 글로벌 공급망 거래 관계와 수출 경쟁력 유지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셈이다.
공급망 내 요구는 거세지만 기업들의 데이터 관리 역량은 규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탄소 데이터 관리 방식(복수응답)을 묻는 질문에 기업 10곳 중 6곳 이상인 66.3%가 “사내 ERP 등 자체 시스템을 쓴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용 표준 플랫폼이 없어 각자도생에 머물렀다.
특히 고객사 요구에 맞추기 위해 엑셀·수기 문서(42.4%)나 고객사 개별 서식(38.8%)으로 데이터를 일일이 재가공해 입력하는 이중 수작업 부담이 컸다. 기업마다 기준과 서식이 달라 데이터 산출·연계 과정에서 오류와 행정 비효율이 발생하는 구조다. 기업들은 원활한 데이터 교환을 위한 과제로 표준화 서식·템플릿 지원(64.0%)과 협업 플랫폼 제공(53.7%)을 꼽았다.
표준 플랫폼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비용과 인력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플랫폼 도입의 최대 걸림돌로는 시스템 구축 및 연계 비용 부담(64.0%)과 전담 인력 및 시간 부족(62.7%)이 1, 2위로 지목됐다. 향후 3년간 데이터 관리에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이 들 것이라는 응답이 44.7%, 5000만원 이상이라는 응답이 43.3%에 달했다. 초기 재정 부담이 플랫폼 도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으로 보인다.
대한상의와 공단은 지난 6월 출범한 ‘산업단지 MRV 플랫폼’을 통해 기업 애로 해소에 나서고 있다. MRV 플랫폼은 탄소배출량 측정(Measurement)부터 보고(Reporting), 검증(Verification)까지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통합 시스템이다. 두 기관은 계측기·센서 등 측정설비 설치와 내부 시스템 연계 비용 바우처 지원을 추진한다. 탄소 데이터 산정 컨설팅과 전담인력 인건비 지원, 저탄소 설비 금융지원 등 단계별 정책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국내 공시제도 법제화에 이어 글로벌 탄소규제로 이제 검증된 탄소데이터가 없으면 수출이 차질이 생기는 등 공급망 탄소데이터 관리가 발등의 불이 된 현실”이라며 “기업들이 비용과 인력 걱정 없이 표준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규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상의가 실무 교육과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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