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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K-씨어터] 신나게 통과한 비극…김아라의 '맥베스'

Yonhap News Agency ·
[김수미의 K-씨어터] 신나게 통과한 비극…김아라의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살육과 욕망, 죄의식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중량감을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대학로에서 오랜만에 만난 김아라 연출의 무대는 경쾌했다.

최근 막을 내린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The Sound of Macbeth, 9월 8∼13일, 대학로극장 쿼드)는 김아라 연출 특유의 감각과 과감한 실험성으로 작품이 지닌 무게를 소리와 몸, 움직임 속으로 끊임없이 이동시켰다. 덕분에 익숙한 고전 비극 한 편이 장중함에 짓눌리지 않은 채 살아 움직이는 사건으로 다가왔다.

맥베스의 정동환과 레이디 맥베스의 김성녀는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준 두 축이었다. 두 배우가 원작의 비극적 무게를 충분히 품어주었기 때문에 그 주변의 배우들은 오히려 훨씬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었다.

세 마녀를 비롯해 코러스의 기능을 넘나드는 일인다역의 배우들은 무대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축이었다. 정동환과 김성녀가 비극의 중심을 붙들었다면 이 이름 없는 존재들은 그 주변을 끊임없이 교란하며 무대의 엔트로피를 높였다.

속삭임과 중첩된 발화, 반복과 이동은 장면을 한곳에 고정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흩뜨렸다. 무거운 이야기가 낮게 가라앉지 않고 박진감 있는 리듬과 템포를 획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들의 힘이 컸다.

극장 쿼드의 사면 공간을 활용한 무대 구성은 이러한 운동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장했다. 정면 객석을 사용하지 않는 공연은 대개 2면이나 3면의 객석을 사용하거나, 4면을 쓰더라도 배우의 동선과 관객의 시야를 고려해 모서리에 충분한 등·퇴장 공간을 둔다. 김아라는 관객이 네 면의 벽을 따라 이어 앉도록 배치하고, 객석 사이에는 배우가 드나들 최소한의 통로만 남겼다. 그 결과 무대는 어느 한 방향으로 길게 뻗지 않은 넓은 정방형에 가까워졌다.

이 공간에 선 배우는 어느 한 면을 정면으로 삼을 수 없다. 배우들은 몸을 천천히 돌려가며 360도로 연기했고, 관객들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소리에 둘러싸인 채 눈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물들의 동선을 쫓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 정면과 후면의 구분이 흐려지면서 공간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청각 장(場)이 됐다.

이 선택에는 대가가 따랐다. 배우가 등을 돌리거나 반대편으로 멀어질 때 일부 대사는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천장에 여러 개의 마이크를 설치했지만 사면 공간이 가진 물리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김아라는 공간의 개방성과 소리의 방향성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 공연의 현대성은 무엇보다 익숙한 텍스트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듣고 보게 하는 데 있었고, 고전의 언어를 오늘의 말로 바꾸는 일은 그에 비하면 부차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작의 주요 골격과 핵심적인 대사를 살리면서도 장면의 호흡은 훨씬 유연해졌다. 소리와 몸,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개입됐고 텍스트는 감각적으로 전달됐다. 관객은 언어의 의미를 좇는 대신 시각적 이미지와 낯선 소리를 통해 '맥베스'를 새롭게 체험하게 된다.

사면 중간에 설치된 네 개의 붉은 단상과 마이크는 마녀들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공간이다. 즉위식에 필요한 긴 테이블과 맥베스에게 씌울 왕관은 천장에서 내려오고, 절단된 팔다리와 피아노 윗판은 설치미술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다. 고정돼 있어야 할 사물들조차 제자리를 벗어난 공간은 현실과 환영, 외부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가 불안정하게 뒤섞이는 공연의 감각과 닮아 있었다.

작품의 상징적 오브제였던 피아노는 '맥베스2', 대본상의 '피베스' 송용진이 연주했다. 김아라가 새롭게 창조한 이 인물은 맥베스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실제 무대에서는 훨씬 역동적인 역할과 기능을 맡았다.

그의 연주는 말보다 먼저 움직였고, 대사가 끝난 뒤에도 남았으며, 정동환의 발화와 나란히 흐르다가 때로는 비껴갔다. 송용진의 연주와 대사는 맥베스의 의식에 침투해 그를 흔드는 또 하나의 독립된 자아처럼 작동했고, 그의 심리를 해설하는 일은 맡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송용진의 즉흥연주는 훌륭했다. 그는 이미 정해진 악보나 감정을 음악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당일 배우의 호흡과 발화, 장면마다의 긴장에 반응하면서 매 순간 다른 파동을 만들어냈다. 그의 연주는 그야말로 매일매일 무대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맥베스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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