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음악의 여왕’ 돌리 파튼 별세…향년 80
파튼의 유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가 내슈빌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발표했으나,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그의 대변인은 그가 자택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사망 며칠 전, 파튼은 피플 지와의 인터뷰에서 명확히 밝히지 않은 건강 문제를 겪고 있지만 계속 일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6살 때부터 노래를 만들고 부른 파튼은 1960년대말부터 무대에 선 이래 활기 넘치는 컨트리 음악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배우로 활약하며 특유의 카리스마와 진심 어린 가사, 뛰어난 사업가적 수완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파튼의 유쾌한 성품, 상징적인 높이 솟은 금발 머리, 화려한 의상, 그리고 육감적인 자태는 모든 계층의 미국인들을 매료시켰으며 컨트리 음악을 세계적인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다.
‘코트 오브 매니 칼러스(여러 색깔의 코트)’ ‘젤렌’ ‘아 윌 올웨이즈 러브 유(늘 당신을 사랑할거야)’ ‘나인 투 파이브(9시에서 5시까지)’ 등 명곡을 남긴 파튼은 1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가수 중 한명이었다. 공로상을 포함해 총 11회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파튼은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하고, ‘나인 투 파이브’ 등 영화에 출연했고, 고향인 테네시주에 유명 관광지가 된 테마파크 ‘돌리우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파튼은 스스로 극빈층 출신이라 부른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서 미국 서민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 사업에 자신의 이름과 재산을 기부해 더욱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파튼은 밴더빌트 대학교의 백신 연구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여 모더나 백신 개발의 초기 후원자가 되었다. 미국 전역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의 어린이들을 위한 문해력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자신이 태어난 테네시주 카운티의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내슈빌 카운티는 감사의 뜻으로 법원 앞에 그녀의 실물 크기 동상을 세웠다.
1946년 테네시주 피트먼 센터에서 태어난 파튼은 인근 로커스트 리지의 방 한 칸짜리 오두막에서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담배 농사를 짓던 로버트 리 파튼의 12자녀 중 한 명이었던 파튼은 6살부터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11세에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음악 활동을 위해 내슈빌로 이주해서 컨트리 가수 포터 와고너와 유명한 파트너십을 시작해, 가수로서 성공의 길로 들어섰다.
큰 가슴의 외모는 언제나 뜨거운 관심거리였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했으나, 결국 화려한 의상 스타일과 풍만한 체형에 대한 반복되는 질문들에서 유머를 찾아냈다. 가슴 무게 때문에 누워 지낸다는 루머에 대해서도 피플 잡지에 “음, 무겁긴 하지만 아직 날 불구로 만들진 않았어요”라고 웃어넘기며, 오히려 자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파튼은 자신의 모든 히트곡을 직접 썼다. 평생 동안 약 3000곡을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약 450곡을 음반으로 녹음했다. 노래 중 25곡이 빌보드 컨트리 차트 1위에 올랐다.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고, 2007년에는 최고 영예인 조니 머서 상을 받았다. 2022년에는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78년 첫 그래미상을 받았다.
파튼은 자서전에서 “가사를 쓸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며 “결국 내가 좋은 싱어송라이터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노래는 나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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