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지방이전 '3대 난제'…먼 현장, 느린 대응, 탈인재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논의가 국책은행과 금융감독기관 등 금융권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금융회사와 기업 등 주요 업무 상대방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금융기관까지 지역으로 분산할 경우 업무 비효율과 위기 대응력 저하, 전문인력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의 업무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공공기관과 동일한 이전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업무 상대는 서울인데…기관만 지방으로?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대상으로 한국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이어 금융감독원까지 거론되면서 금융권 내부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업무 대상과 기관의 물리적 분리에 따른 비효율이다. 금감원 노조에 따르면 금융회사 본점의 91.6%, 현장검사 대상의 88.3%, 금융민원의 81.4%, 상장기업 본사의 72.7%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정책금융기관만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현장 접근성이 떨어지고 잦은 출장에 따른 교통비 등 업무 비용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 취지와 별개로 금융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공공기관과 같은 잣대로 지방 이전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산업은행 등이 거래하는 대상의 90%가 서울과 수도권에 모여 있는데 금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면 그만큼 비효율이 발생한다"며 "일반 공공기관은 지역 발전을 위해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지만 금융기관은 업무 특성을 별도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거래소의 경우 본점은 부산에 있지만 증권사 본점이 대부분 서울에 있다 보니 서울사무소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본점은 부산에 있지만 주요 업무는 서울에서 하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해외 주요국에서도 핵심 금융기관의 본부는 수도나 주요 금융 중심지에 자리한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기관인 일본 금융청(FSA)은 도쿄,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런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있다. 정책금융기관도 미국 수출입은행(EXIM Bank)은 워싱턴DC, 영국 수출금융청(UKEF)은 런던,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은 도쿄에 본부가 있다. 평소엔 비효율, 위기 땐 '속도' 문제금융기관의 지역 분산은 평상시 업무 비효율을 넘어 경제·금융위기 때 대응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정책금융기관, 거래소 등 관계기관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공유하고 신속하게 대응책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경우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반도체·인공지능(AI)·미래에너지 등 국가전략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정책금융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관계기관 간 신속한 의사결정과 공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도 "금융위기 때는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즉각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결정해야 한다"며 "금융 핵심기관들이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면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공조에 제약이 생길 수 있고, 대응이 늦어질수록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금융기관을 지방으로 나눠 놓으면 한국의 국제 금융 경쟁력도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도 "올해 상반기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이 세계 137개 도시 가운데 8위를 기록한 것은 금융산업에서 집적효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기관은 옮겨도 전문인력까지 따라갈까더 큰 문제는 핵심 전문인력의 이탈이다. 금융감독과 정책금융은 회계·법률·기업금융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금감원의 경우 전체 직원 약 2450명 가운데 회계사와 변호사 등 전문인력이 약 850명으로, 지방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민간 금융회사로의 인력 유출이 가속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공공 금융기관의 급여나 처우가 민간 금융회사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차라리 서울에 있는 은행이나 증권사로 옮기겠다는 분위기도 있다"며 "전문인력 이탈이 본격화하면 조직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주 여건도 직원들의 동요를 키우는 요인이다. 금융기관들이 서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금융권 맞벌이 부부의 근무지가 갈리는 데다 자녀 교육과 육아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부부가 모두 금융권에 종사하는 경우 한 명은 부산, 다른 한 명은 세종으로 이전하게 되는 식으로 근무지가 갈릴 수 있다"며 "자녀 교육이나 육아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면 직원들의 동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추진 과정에서는 실제 직원 이탈이 크게 늘기도 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통상 조합원 2200명 가운데 연간 자발적 퇴사자는 30~40명 정도였는데, 부산 이전이 처음 추진된 2022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2년 반 동안 200명이 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며 "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문인력이 대거 이탈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노조 다음 달 4일 총파업 돌입금융권의 반발은 이미 집단행동으로 번지고 있다. 이전 계획이 공식화된 뒤에는 이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에 발표 전부터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정부가 국책은행 등의 지방 이전을 강행할 경우 오는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총파업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다음 달 4일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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