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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회 불법촬영에도 ‘초범’ 참작…성범죄 양형기준 이대로 괜찮나

Kyunghyang Shinmun ·
155회 불법촬영에도 ‘초범’ 참작…성범죄 양형기준 이대로 괜찮나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폭력 이후, 법원의 시간-젠더폭력 사건의 양형 기준과 판결을 들여다보다’ 포럼에 참석해 사건 사례 등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사촌 누나를 수차례 강제추행한 가해자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점이 반영되면서다. 29명을 상대로 155차례 불법촬영을 저지른 피고인은 이전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점이 재판에서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됐다.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비롯해 가해자에게 유리한 사정들이 양형에 지나치게 폭넓게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처벌불원이 양형에 미치는 영향력을 낮추거나 아예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피해 회복을 요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배제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평등가족부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폭력 피해 이후, 법원의 시간-젠더폭력 사건의 양형기준과 판결을 들여다보다’ 포럼에서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2025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젠더폭력 판결 등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 교수는 일반 성범죄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이 형량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친다며 양형기준에서 삭제하거나 특별양형인자에서 일반양형인자로 위상을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일반 성범죄에서 처벌불원은 형량의 감경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하게 반영되는 특별양형인자다.

한 교수는 범행의 심각성에도 뒤늦게 이뤄진 합의와 처벌불원이 형량을 크게 좌우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피해자가 성범죄로 원치 않는 임신과 유산을 겪은 사건에서 피고인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에서 피해자와 합의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례 등이 제시됐다.

피해자가 여러 명일 때 일부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고려되는 문제도 제기됐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22년 6월부터 1년간 디지털성범죄 판결의 양형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들의 의사가 서로 다른 경우에도 처벌불원이 양형에 참작되는 사례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피해자 3명이 엄벌을 탄원했지만 합의금 200만원을 받은 다른 피해자 1명이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사실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고려된 판례가 대표적이다.

이경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처벌불원이 피해자에게 “결국 처벌이냐 돈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엄정한 처벌과 피해 회복을 모두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합의를 통해 배상받으려면 처벌불원 의사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폭력은 아는 사람에 의한 범행이 적지 않아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할 경우 자신 때문에 가해자가 수감된다는 심리적 부담까지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처벌불원을 성범죄 양형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왔다. 성범죄 피해자 대리를 해온 박수진 법무법인 혜석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처벌불원이라는 양형 관련 권리를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합의 과정에서 단순히 금전적인 배상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사과문을 쓰게 하거나, 주변인들에게 잘못 이야기한 부분을 바로잡도록 한다든지 민·형사절차를 통해서는 얻기 어려운 조치들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재판 과정에서 현행 양형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거나, 양형기준에 명시되지 않은 사정이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고려되는 사례도 지적됐다.

현행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은 형사처벌 전력이 없더라도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상당 기간 반복적으로 범행한 경우에는 이를 유리한 양형인자로 보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판결에서는 29명을 상대로 155차례 범행하거나 1년 넘게 143차례 범행한 경우에도 이전 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이 유리하게 고려됐다. 수사기관이 촬영물을 압수해 촬영물이 유포되지 않았는데도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유리하게 참작한 판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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