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숨진 구호활동가 6명 중 1명, 최근 3년 가자에서 죽었다[세계 인도주의의 날]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 소속 구호활동가의 동료들이 지난해 4월1일(현지시간) 안장식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지난해 3월23일 구호 출동 과정에서 구호요원 8명, 유엔 직원 1명 등 총 15명이 이스라엘군 총격으로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
지난해 3월23일 이스라엘 점령지인 가자지구에서 실종된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 소속 구호활동가 8명과 유엔(UN) 직원 1명 등 15명이 일주일 뒤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손발이 결박된 이들의 시신에서는 총상이 발견됐다. 이후 공개된 영상에 비상조명을 켜고 달리는 모습이 담겼던 응급 차량은 완전히 구겨진 채 모래더미에서 발견됐다. 구호 차량 인지 여부와 구호 요원의 시신과 차량을 매장한 이유 등을 두고 전쟁 범죄 논란이 불거졌다. 한 달간 자체 조사를 벌인 이스라엘군의 결론은 “작전상 오인”이었다.
19일 세계 인도주의의 날을 맞아 경향신문이 휴머니터리언 아웃컴스(Humanitarian Outcomes)가 구축한 ‘구호활동가 보안 데이터베이스(AWSD)’를 분석한 결과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 분쟁·위기 지역에서 숨진 구호활동가는 6명 중 1명꼴로 가자지구 등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AWSD는 1997년 이후 전 세계 구호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주요 사건을 수집·검증한 자료로, 유엔·비정부기구(NGO)·각국 정부 등의 공식 보고서와 분석에 활용되는 공신력 있는 데이터베이스다.
집계 결과,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 각지에서 숨진 구호활동가는 모두 3398명으로, 이 가운데 600명(17.7%)이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00명 중 550명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벌어진 2023년 이후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이후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숨진 구호활동가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구호활동가의 무덤’이 된 가자지구의 현실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550명 중 545명이 가자지구, 5명이 서안지구에서 숨져 피해는 가자지구에 집중됐다.
2023~2025년 3년간의 데이터로 확인된 이들의 죽음에서는 전쟁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진 가자지구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망자 다수는 공습(71.4%)으로 목숨을 잃었고, 포격(10.5%)과 총격(8.9%)이 뒤를 이었다. 특히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23년 141명에서 지난해 127명으로 소폭 줄어든 반면 총격 사망자는 같은 기간 3명에서 18명으로 늘어났다. 전투기를 동원한 대규모 군사 작전의 피해뿐 아니라 교전 중 직접적인 총격 피해도 증가한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스라엘군(79.1%)의 공격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원인 불명(19.3%)과 하마스(1.5%)가 차지했다.
‘위기의 보편화’는 구호활동가가 숨진 장소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구호활동가가 숨진 장소는 위치 불명(67.0%)을 제외하면 사무실·공공장소(9.9%), 구호 현장(8.6%), 이동 경로(8.1%), 자택(6.4%) 순이었다. 지난해 3월 구호 지역으로 이동하던 중 집단 사망한 PRCS 요원들처럼, 구호활동가들은 구호 현장에서 무장 세력의 공격에 노출되는 위험뿐만 아니라 숙소나 일터·이동 경로 등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장소에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는 같은 기간 사망자 수가 두 번째로 많은 수단(157명)과 비교해도 두드러지는데, 수단은 구호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가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이스라엘 점령지에서는 구호활동가가 피해를 입을 경우 사망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다른 분쟁·재난 지역보다 크게 높았다. 2023~2025년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발생한 사상 및 납치·구금 피해자 총 801명 중 사망자(550명)는 68.7%에 달했다. 반면 부상자(194명)는 24.2%였다. 이는 통상 사망자보다 부상자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분쟁·재난 지역의 통념을 깨는 수치로, 가자지구가 처한 현실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수단은 전체 피해자 중 사망자 비율이 48.3%로 높은 편에 속했으나 이스라엘 점령지에 비하면 약 20%포인트 이상 낮았다. 이외 대부분 지역에서는 부상자 비율이 사망자 비율보다 높았다.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공습과 지상 작전, 의료시설 파괴와 구호물자 반입 금지 등이 구호활동가의 사망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기간 사망을 유발한 공격의 65.8%가 전투·군사작전에 휘말린 사례였고, 18.9%가 군사 표적 여부나 공격 동기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로 조사됐다.
소속 기관별로는 유엔 소속의 구호활동가(385명·70%)가 가장 많았고 국제 NGO(69명·12.5%), 적신월사(43명·7.8%) 순으로 사망자가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사망자 550명 중 542명이 팔레스타인 국적의 활동가였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외부 지원과 접근이 제한된 상태에서 사실상 현지 인력에 의존한 구호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상 및 납치·구금을 포함한 전체 피해자의 성별은 남성이 443명(55.3%), 여성이 164명(20.5%), 성별 미상 194명(24.2%)이었다.
공식 통계는 지난해까지 집계됐지만 올해도 가자지구 구호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이어지는 중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지난 14일 발표한 인도주의 보고서에서 이스라엘군이 지난 7일 서안지구 내에서 부상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PRCS 대원들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구급대원 2명이 최루 스프레이를 맞았고, 구급 차량 3대와 이동식 물탱크 1대가 부서졌다. 지난 10일 최종 집계된 AWSD 통계에서는 올해 20명의 구호활동가가 사망했으며, 3명의 부상자, 6명의 구금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 점령지에 이어 1997년 이후 많은 구호활동가 사망자가 발생한 곳은 아프가니스탄(490명), 시리아(315명), 수단(302명), 남수단(283명), 소말리아(260명) 순이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은 분쟁·재난·질병 등 세계 각지의 위기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는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헌신을 기리고 이들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유엔이 제정한 기념일이다. AWSD의 데이터베이스는 사망·부상·납치·구금 등 피해 양상과 공격 유형 등을 장기간 수집해 기간별·지역별 폭력 양상과 피해 치명도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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