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에 45만원 ‘AI 보너스’ 드립니다”···돈 벌면 국민에 나눠주는 황금국들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인공지능(AI) 산업이 돈을 벌면 누가 웃을까. AI를 만든 기업의 주주일까,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기업일까, 아니면 그 산업을 키우기 위해 전력·세금·인프라 등을 제공한 국가일까. 그렇다면 그 나라의 국민도 조금쯤은 웃을 수 있을까. 대만은 그 질문에 흥미로운 답변을 내놨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2027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1만 대만달러(약 45만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AI 보너스’ 계획을 발표했다. AI와 고성능컴퓨팅, 클라우드 수요 증가에 힘입어 대만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자 정부는 2357억 대만달러를 들여 국민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대만이 전 국민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지급이 실현되면 여섯 번째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인당 3600대만달러 상당의 소비쿠폰을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에는 3000대만달러, 2021년에는 5000대만달러 상당의 소비쿠폰을 나눠줬다. 2023년에는 경기 부양을 위해 6000대만달러의 현금을 지급했고, 지난해에는 미 관세와 물가 충격 등에 대응한다며 전 국민에게 1만 대만달러를 지급했다.
그러나 이번엔 배경이 다르다. 경제 위기가 아닌, 호황의 대가로 ‘보너스’를 지급하는 형식이다. 대만 통계 당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11.0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39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세계적인 AI 붐 속에서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 공급망이 호황을 누린 결과다. 라이 총통은 이를 “전 대만인이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평가하면서, 평균적인 성장률에만 매달리지 않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가정과 평균 이하 계층도 성장의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와 반도체가 대만 경제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중 하나로 끌어올린 지금, 이번 정책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한 나라를 먹여 살리는 산업이 생겼을 때, 그 성공의 과실은 기업과 주주만의 몫일까. 생각해 보면 이미 세계 곳곳에는 비슷한 실험이 있다.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사례는 미국 알래스카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70년대 석유 개발로 얻은 수입 일부를 알래스카 영구기금에 적립했다. 그리고 이 기금의 수익 일부를 일정한 요건을 갖춘 주민들에게 매년 영구기금배당금으로 지급한다. 2025년에는 1인당 1000달러가 지급됐다. 올해도 주민들이 배당금 신청을 마친 상태다.
발상은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이다. 석유는 누군가 개인의 땅에서 갑자기 솟아난 돈이 아니라 알래스카라는 공동체가 가진 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원으로 생긴 부의 일부도 공동체 구성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다.
기업으로 치면 주주 배당과 비슷하다. 다만 여기서 주주는 특정 주식을 산 사람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다. ‘우리 땅의 석유가 돈을 벌었으니, 우리도 배당을 받는다’는 개념이다.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성과급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옆나라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정책이 나왔다. 캐나다 최대 산유 지역인 앨버타주는 올해 처음 ‘앨버타 에너지 리베이트’를 도입했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늘어난 에너지 관련 세수를 주민들에게 직접 돌려주겠다는 취지다. 18세 이상 주민 가운데 2025년 소득세 신고를 마치고 가구 연소득이 22만5000캐나다달러(2억2800만원) 이하인 경우, 1인당 100캐나다달러를 받을 수 있다. 신청은 지난 7월 1일부터 시작됐다. 알버타주 정부는 휘발유 가격 상승이 연료비뿐 아니라 식료품과 공공요금 등 전반적인 생활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에너지로 벌어들인 수입을 주민의 주머니로 직접 돌려주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알래스카처럼 수십 년간 이어온 ‘석유 배당’ 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이번 정책 역시 20년 전 앨버타주가 석유 호황으로 생긴 재정 흑자를 주민에게 나눠준 사례와 비교했다. 캐나다 글로벌뉴스에 따르면 앨버타주는 최근 몇 달간 높은 유가로 늘어난 세수 일부를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이번 정책을 설계했다. 다니엘 스미스 앨버타 주지사는 “주민들이 이미 그 돈을 냈고, 우리가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유값이 오를 때 산유 기업과 정부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늘어난 재정의 일부를 주민에게 직접 돌려주는 방식이다. 앨버타주의 이번 정책은 ‘산업의 호황으로 생긴 돈을 누가 가져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현실적인 답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 통장에 돈을 직접 꽂아주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북해 석유와 가스에서 얻은 막대한 수입을 ‘정부연기금 글로벌(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에 쌓아왔다. 기금의 목적 자체가 현재와 미래 세대가 모두 석유 부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데 있다. 정부가 석유 수입을 당장 다 써버리지 않고 장기 자산으로 바꾸겠다는 선택이다.
이 기금은 이제 세계 최대 국부펀드로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규모는 약 2조3000억달러에 달했고, 최근 6개월 동안에만 1조7500억노르웨이크로네의 기록적인 수익을 냈다. 노르웨이가 석유와 가스에서 얻은 돈을 전 세계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해 또 다른 부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AI로 돌아온다. 석유는 땅속에 묻힌 천연자원이기 때문에 ‘국민 자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어느 날 갑자기 천재 창업가가 만들어낸 기술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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