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리들리 스콧이 그린 반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폐허 끝에 남은 것은 ‘희망’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라는 장르 설명만 들으면, 지난 26일 개봉한 노장 감독 리들리 스콧의 신작 <도그 스타 : 마지막 희망>은 폐허의 시대를 사랑스런 반려견과 함께 헤쳐나가는 휴먼 드라마일 것만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체로 틀렸다. 주인공 ‘힉’(제이콥 엘로디)은 경비행기에 태운 반려견 재스퍼가 착륙시 놀라지 않을까 걱정하는 애견인이지만, 재스퍼는 극 초반에 죽음을 맞는다. 힉과 재스퍼의 이야기는 그 후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역병이 미국을 휩쓸고, 대도시 덴버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황폐화된다. 힉은 그 외곽 산자락의 격납고에 살면서 경비행기를 몰고 덴버를 찾아 남은 물건을 챙겨오고 주변의 동태를 살핀다. 약탈자들이 주변 도시에서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힉은 경비행기를 타고 인근의 다른 도시 그랜드정션에 가면 살 길이 열리리란 희망을 품는다.
제대로 된 통신수단도 없는 세상이라, 힉은 그랜드정션의 상태가 어떤 지도 모른다. 이따금 비행기를 몰 때 그랜드정션에서 온 듯한 희미한 교신을 들을 뿐이다. 힉은 희망을 찾기 위해 비행을 시작하지만, 비행기 고장으로 다른 산골에 불시착한다. 거기서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시마’(마가렛 퀄리)를 만난다. 둘은 역병으로 소중한 이를 잃은 아픔을 공유한다. 힉은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시마는 뉴욕에 살던 남자친구를 잃었다. 고장난 비행기를 고치고 나무를 베어 활주로를 확보하하면서 둘은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영화 <도그 스타 : 마지막 희망>의 주인공 ‘힉’(제이콥 엘로디·왼쪽)은 경비행기가 불시착한 곳에서 ‘시마’(마가렛 퀄리)를 만난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극의 중반부까지 영화의 장르적 성격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약탈자의 존재는 보이지 않고, 역병의 정체도 알 수 없다. 경비행기가 비행하는 푸르고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모습은 목가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화의 분위기는 일순간 변한다. 인간이기보다는 짐승 떼 같은 약탈자들이 찾아온다. 거처에 더는 머물 수 없는 시마 부녀를 태운 힉의 비행기는 약탈자들의 습격 속에 겨우 날아오른다. 갑자기 그랜드정션 관제탑의 교신이 또렷해지고, 힉은 그토록 바라던 그랜드정션에 시마 부녀와 함께 도착한다. 이때부터 긴장감이 고조되고, 극 전개가 갑자기 급박해진다.
영화는 2012년 발간된 피터 핼러의 소설 <도그 스타>를 원작으로 했다. “끝내 소멸되지 않는 반짝이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출판사(문학동네)의 소개처럼, 영화도 극한 상황에 몰린 인물들이 희망을 발견하는 모습을 그린다. 제목과 다르게 흘러가며 반전을 거듭하던 영화는 휴먼 드라마라는 정체성만큼은 잃지 않는다.
역병이 무엇인지, 약탈자들이 누구인지, 이것들이 왜 벌어진 것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지만 예고 없이 삶에 찾아오는 수난들에 이들을 대입해도 영화가 전하고픈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비주얼리스트’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스콧 감독은 이탈리아 북동부의 작은 마을, 로마에서 가까운 시르세오 국립공원 등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공들여 촬영한 광활한 자연은 그곳을 활공하는 힉의 작은 비행기와 대조돼 인상적이다. 때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때문에 극의 절정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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