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개헌 뒤 첫 ‘대법관 재제청’…대통령 임명권 우선 원칙 분명히
청와대가 28일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재제청을 요구한 것은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로 제약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재제청을 요구한 것은 1987년 지금 헌법으로 개정된 뒤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안에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는 만큼 이번에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제청과 임명은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서로 다른 헌법기관에 배분된 권한”이라며 “국민 주권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제청권은 임명권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하는 권한이 아니라 임명권이 올바르게 행사되도록 뒷받침하는 권한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임명권이라는 것 자체가 실질적인 심사 재량을 내포하고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귀속되지 않은 권한으로 재제청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저희가 법률 검토 후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대법원은 헌법상 부여된 제청권을 근거로 제청 절차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반면, 청와대는 대통령의 실질적인 임명권을 전제로 제청권이 행사돼야 한다고 맞섰다.
강 수석대변인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를 거쳐 제청에 이르러 온 것도 각 기관 간의 권한을 상호 존중하라는 헌법의 취지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자에 대한 제청은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의 협의 관행은 임명권자와 제청권자 어느 한쪽의 의사만으로 최고법원이 구성되는 일을 막고 그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 온 절차적 장치였다”고 덧붙였다. 사전 협의가 관행이 아닌 거쳐야 할 ‘절차’라고 강조한 것이다.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이 협의를 거쳐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한 김성수 후보자(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임명동의안은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법원행정처가 손 후보자 제청 직전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추천된 후보자들에게 개별 연락해 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을 물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이미 정당하게 추천된 후보자들을 제청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후보자 개인에게 타진한 것은 인사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 시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정하고 있다. 대법원장도 대법관의 장기 공석으로 인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대한 신속히 재제청 절차를 진행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관 후보 추천위는 지난 1월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판사와 손 부장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이라는 대법원 본연의 역할을 고려할 때 손 후보자에 대한 이번 제청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국민적 요청에 부합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인 김민기 판사가 대법관 다양화에 적임이라는 취지로 읽힌다. 대법원은 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관련 절차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절차적 하자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며 “국민주권 원리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라고 논평했다. 반면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통령의 명백한 헌법위반으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사법부와 입법부의 헌법상 권한을 훼손하는 명백한 삼권분립 부정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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