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어간다"…싸움꾼 할머니들의 후예
▶ 글 싣는 순서 ①[단독]"일본 두들겨 패는 놈은 나 하나"…욕쟁이 할머니의 불호령 ②[단독]"우리 같은 여성들 돕고 싶다"…연대로 싸운 김복동·길원옥 ③혐오시위에도 밥 한 공기 뚝딱…'존재 자체가 증언' 박필근 할머니 ④"끝나지 않은 전쟁 우리가 이어간다"…싸움꾼 할머니들의 후예 (끝) 최고기온이 39도까지 올랐던 지난 5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에 60여 명이 모여 "공식 사죄하라, 법적 배상하라"는 구호를 크게 외쳤다.
1992년 시작돼 매주 수요일마다 이어져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극한 폭염 속에서도 계속됐다. 폭염에도 이날 1764차 정기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경기자주여성연대 소속 대학생과 양서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미국 하버드대 재학생 등이 무대에 올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비극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앞으로도 연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더위에 빨개진 얼굴로 연신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닦으면서도 이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할머니들이 평생 이어온 싸움은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는 '싸움꾼 할머니들의 후예들'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위안부 가짜' 모욕에 갇혔던 소녀상…할머니들 뜻 잇는 미래세대 할머니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던 전쟁은 끝났지만, 피해 사실을 부정하고 생존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싸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 역시 이런 역사 왜곡에 맞서 자신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싸워왔다. 그러나 2019년부터 국내 극우 단체 등 역사 부정 세력이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고, 소녀상을 훼손하거나 옆에서 '위안부는 가짜'라는 등의 망언을 쏟아내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결국 2020년 6월 소녀상은 보호 명목 아래 바리케이드에 갇혔다. 이 모습을 본 외국인 관광객들은 소녀상이 잘못된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혐오와 모욕에 앞장섰던 단체 대표가 구속기소됐고, 5월 6일 바리케이드가 걷히면서 소녀상도 자유를 찾았다. 할머니들의 투지를 이어받은 후예들이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고 싸워온 덕분이었다. 일반 회사에 다니다 2023년부터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감자(활동명·33)는 이날 수요시위에서 그늘 하나 없는 무대 앞에 서서 구슬땀을 흘리며 율동을 선보였다. 시위가 끝난 뒤 그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지난해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집회를 꼽았다. 그는 "그 주간엔 원래 비가 안 오는데 몇 년 만에 비가 왔다. 사람이 떠내려가는 정도여서 시민들이 찾아줄지 걱정을 했다"며 "그런데 시민들이 줄을 지어 들어왔고 비 오는 것도 장난인 것처럼 서로 물장구를 치면서 즐겼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연대를 가장 크게 느낀 순간이었다. 그는 "활동가를 그만두게 돼도 이 순간 때문에 계속 '위안부' 운동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서고등학교 2학년 박준선(18), 구호정(18), 유현지(18)양은 학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 수호 동아리 '햇담'을 운영하고 있다. 준선양은 "축제 부스에서 '위안부' 관련 전시를 했는데 학생들이 자진해서 찾아보고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더 갖고 더 알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이런 작은 활동도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웃었다. 할머니들 떠난 뒤…공식사죄·운동 확장이 과제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가 5명밖에 남지 않은 지금, 앞으로의 운동을 이끌어갈 미래세대가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공식사죄와 운동의 지속이었다.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이어가고 확장할 것인지도 고민이었다. 활동가 감자는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다. 다양한 활동을 해도 결국 일본 정부가 깔끔하게 해결을 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피해 당사자가 살아계시는 동안 법적 문제를 빠르게 청산하고,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과거의 이슈가 아니라 전시 성폭력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서고 유현지양은 "지금 청소년들은 '도파민'이 있는 자극적인 주제들에 관심을 갖는다. '위안부'처럼 중요한 역사적 문제들이 점점 잊혀지는 현실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동아리 구호정양도 "할머니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는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가 사회에 더 크게 부각될 기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호정양은 이어 "특히 최근에는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위안부' 등 역사적인 문제가 사회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며 "청소년과 2030 세대들이 '위안부' 문제를 더 많이 접하도록 해서 앞으로도 이 문제가 계속 다뤄지고 해결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할머니들 생전 활동이 유산"…'싸움' 이어가는 미래세대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해결을 촉구할 미래세대는 이미 준비돼 있다. 할머니들이 살아계신 동안 남긴 유산을 이어받아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알리고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준선·호정·현지양은 '위안부' 피해자 인권 수호 동아리에서 이 문제를 알리는 잡지를 직접 만들어 교내 학생들과 공유하고, 온라인에서도 홍보 활동을 열심히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주변 친구들이 게시물에 먼저 관심을 갖거나 동아리 체험전에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변화를 느끼고 있다. 현지양은 "동아리를 시작한 이유는 청소년들에게 일본군 '위안부'라는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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