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 350년 전에도 달콤한 술이…감향주
술을 표현할 때 빠지지 않는 말 가운데 하나가 '달다'는 것이다. 요즘은 과일이나 꿀을 넣은 술부터 단맛을 강조한 막걸리와 하이볼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다. 쓴맛이나 강한 알코올 향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 달콤한 술은 비교적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술이다.
그런데 달콤한 술을 좋아하는 것은 요즘 사람들만의 취향이 아니다. 350여 년 전 우리 조상도 이름부터 '달고 향기로운 술'을 빚었다. 바로 감향주(甘香酒)다. '달 감'(甘)에 '향기 향'(香)을 쓰니 이름 그대로 풀면 '달고 향기로운 술'이 된다. 설탕이나 감미료를 넣어 단맛을 낸 술은 아니다.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 과정에서 진한 단맛을 끌어냈다.
감향주는 여러 옛 문헌에서 확인된다. 15세기 '산가요록'에는 삼미감향주가 나오고, 16세기 경북 안동의 김유가 쓴 '수운잡방'에도 감향주가 기록돼 있다. 17세기 '음식디미방'과 19세기 '규합총서'에서도 제조법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이 감향주가 모두 같은 계통의 술은 아니다. '산가요록'의 삼미감향주는 제조법에서 '수운잡방'·'음식디미방'·'규합총서'의 감향주와 상당한 차이를 보여, 이름만 같을 뿐 사실상 별개의 술로 보는 시각이 있다. 반면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 '규합총서'의 감향주는 서로 닮은 계통으로 이어지는데, 그 안에서도 재료 선택은 조금씩 달랐다.
'음식디미방'은 멥쌀 1되로 밑술을 앉히는 데 비해 '규합총서'는 찹쌀 4되를 쓴다. 시대와 집안에 따라 '달고 향기로운 술'을 빚는 방식은 조금씩 갈라져 있었던 셈이다.
'음식디미방'의 감향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물의 양이다. 일반적인 술에 비해 물을 매우 적게 쓴다. 물이 적으니 완성된 술의 농도가 높아지고, 쌀에서 만들어진 당분도 진하게 남는다.
우리 술에서는 누룩의 효소가 쌀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고, 효모가 그 당을 먹어 알코올을 만든다. 당을 만드는 과정과 알코올을 만드는 과정이 한 술독 안에서 함께 일어난다. 효모가 당을 많이 소비하면 술은 상대적으로 덜 달아지고, 발효 뒤에도 당이 많이 남으면 단맛이 강해진다. 감향주는 많은 쌀에 비해 물을 적게 넣어 높은 당도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농촌진흥청의 고문헌 복원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음식디미방' 방식으로 만든 감향주는 당도가 41브릭스에 이르렀고, '규합총서' 방식은 49.4브릭스였다. 알코올 도수는 각각 7.2%, 5.0%였다. '수운잡방' 방식의 감향주는 11.6%로 나타났다. 같은 이름을 쓰더라도 시대와 제조법에 따라 술의 성격은 뚜렷이 달랐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설탕과 감미료를 쉽게 구할 수 없던 시대에 왜 이렇게까지 단 술을 만들었을까. 설탕이 귀하던 시대에 단맛은 지금처럼 흔한 맛이 아니었다. 쌀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단맛도 중요한 미각이었다.
더구나 많은 쌀을 쓰고 물을 적게 넣어 빚는 감향주는 재료가 많이 드는 술이다. 일상적으로 갈증을 풀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기보다, 많은 곡물을 들여 진하고 달게 빚어 즐기는 술에 가까웠을 것이다. 감향주는 술 한 잔에도 당시 사람들의 취향과 형편이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50여 년 전 '음식디미방'에 기록된 감향주의 흔적을 오늘날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이름과 만난다. 치킨으로 잘 알려진 교촌이다.
교촌에프앤비와 경북 영양군은 1915년 설립된 옛 영양양조장을 복원해 2022년 '발효공방1991'을 열었다. 오래된 목조 양조장의 공간을 살리고 다시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음식디미방' 전수자인 석계 종가 조귀분 명인의 기술을 전수받아 감향주를 생산하고 있다. 인근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에서는 감향주를 비롯한 '음식디미방' 복원 음식을 단체 예약을 통해 맛볼 수 있는데, 감향주는 도토리죽과 함께 전채로 나오는 대표 메뉴로 꼽힌다.
치킨 회사가 왜 전통주를 만드나 싶지만, 교촌은 간장과 된장, 술처럼 발효를 기반으로 한 식품을 새로운 사업 분야로 넓혀왔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양조장의 공간과 350년 전 조리서에 남은 술 제조법을 현대의 술로 연결한 셈이다.
교촌은 감향주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만 그치지도 않았다. 감향주의 양조 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술이 '은하수 별헤는밤'이다. 경북 영양산 쌀 100%와 자가 누룩을 사용하고, 고당발효를 통해 감향주의 깊은 단맛을 표현한 12도짜리 프리미엄 막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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