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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디세우스는 거지꼴로 돌아왔나…22년만에 그리스어 원전 완역한 번역자의 해석

Kyunghyang Shinmun ·
왜 오디세우스는 거지꼴로 돌아왔나…22년만에 그리스어 원전 완역한 번역자의 해석

18일 서울 마포구 을유문화사에서 만난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22년에 걸쳐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한 <오뒷세이아>를 펴냈다. 권도현 기자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위대한 고대 서사시의 주인공으로 보기엔 여러모로 결격사유가 있는 인물이다. 함께 트로이전쟁에 참전했던 아킬레우스와 비교하면 무력이 보잘것없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온갖 유혹에 빠져 시간을 지체한다. 지도자로서 카리스마도 부족한 것인지 부하들은 왕명을 어기기 일쑤다.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불멸의 주인공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을유문화사에서 만난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오디세우스가 “영웅이라 하기 어려운 영웅”이라고 말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비교해 봅시다. <일리아스>의 영웅은 전통적 영웅입니다. 반짝반짝 빛나고 무공을 드러내고 자기 목숨을 바쳐 신과 같은 반열에 오를 인물들이죠. 오디세우스는 거지꼴로 집에 돌아갑니다. 전통적인 영웅상을 완전히 뒤바꾼 거죠.”

“다만 오디세우스는 화날 수밖에 없는 상황, 자기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듯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여느 인간과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진정한 영웅은 탁월성을 갖고 빛나는 존재라기보다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결국 제자리와 이름을 찾는 존재입니다. 신의 아들이라는 신분이나 탁월한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안일과 나태를 이겨내고 일어나 뚜벅뚜벅 고향으로 향하는 것이죠. <일리아스>의 영웅을 우러러본다면, <오디세이아>의 영웅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가 최근 펴낸 <오뒷세이아>는 고대 희랍어 완역판이다. 제목은 고대 그리스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로 옮겼다. 2004년 <일리아스>와 함께 번역을 시작했으니 22년이 걸렸다. 김헌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3년 안에 끝내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국 오디세우스가 참전했다가 집에 돌아오고도 남는 시간이 걸렸다. 을유문화사는 새로 출범하는 세계문학전집 1, 2번에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배치하려 했으나, 그사이 1, 2번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상·하에 돌아갔다.

김헌판 <오뒷세이아>의 특징은 원문을 살린 직역이다. 통상 지혜, 분별력, 정신 등으로 의역됐던 ‘횡격막’을 그대로 살렸다. 예를 들어 구혼자 안티노오스가 오디세우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비난을 퍼붓자 오디세우스는 “그대의 외모에 횡격막이 어울리지 않는군요”라고 말한다. “무슨 말이 너를 빠져나가느냐, 이빨의 울타리를” 같은 표현, 한국어 어순과 어긋나는 도치도 김헌판의 특징이다. 처음엔 낯선데 읽다 보면 참신하고 또 익숙해진다. 김헌은 “다른 번역본과 비슷한 방식으로 내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부할 때 의존했던 고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 가독성을 높여 독자를 배려했다면, 나는 호메로스 시의 거칠고 씩씩한 면을 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구술문학은 들리는 대로 단어를 축적하면서 이미지를 완성합니다. 번역하면서 애초 시인이 썼던 방식대로 어순을 지킨 이유입니다. 편하게 잘 읽히는 것이 독자 배려냐, 호메로스의 낯섦과 생생함을 살리는 것이 독자 배려냐라고 생각할 때 전 후자를 택했습니다. 기존 번역이 방 안에서 선풍기 앞에 편하게 앉아있는 것이라면, 제 번역은 출렁이는 배를 타고 에게해의 바람을 맞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한 장면. 호메로스 원작 속 오뒷세우스는 영웅답지 않은 영웅이다.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구술문학으로서의 <오뒷세이아>가 가진 특징은 흥행 중인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오디세이>에도 살아있다. 래퍼 트래비스 스캇이 음유시인으로 등장해 트로이전쟁을 노래하는 장면도 그렇다. 김헌은 “놀런은 21세기 호메로스 같다. 굉장히 감탄하면서 봤다”고 평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자신의 집과 이름을 찾아가는 대목에 감동했습니다. 개 아르고스, 아내 페넬로페를 차례로 만나는 장면이 생생하면서도 아날로그적으로 잘 살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학계에서도 소외된 분야였던 서양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데 김헌은 “감격했다”고 말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장벽, 제도적 보장의 부족 등은 뛰어난 인재의 학계 진입을 막는다. 김헌은 “고전연구는 사라지기 직전의 천연기념물과 같은 상태다. 놀런처럼 고전을 현 시대의 문제와 연결해 화두를 던져 관심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20여년에 걸쳐 그리스어를 완역한 <오뒷세이아>를 낸 김헌 교수가 18일 서울 마포구 을유문화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김헌은 자신의 고전공부가 학문을 넘어 인생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오뒷세이아> 출간도 번역 작업을 넘어 삶의 여정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누군가 ‘당신의 이타카는 어디인가?’라고 물었을 때 “이 번역서가 나의 이타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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