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전력 수요 속…시험대 오른 12차 전기본
정부가 2040년까지의 국가 전력 수요를 전망하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초안 마련에 본격 착수한다. 기후위기로 전력 수요의 변동성이 커지는 데다 AI(인공지능)·반도체 산업 투자까지 급증하면서 장기 전력 수요를 예측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변동성이 커진 전력 수요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주요 변수에 따른 복수 시나리오를 확대하는 등 전력 수요 전망 체계를 한층 정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기후부는 오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4·5차 대국민 정책토론회를 열고 2040년까지의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보급 전망을 논의한다.
12차 전기본 초안은 오는 10월 중 발표될 전망이다. 김성환 장관은 이와 관련해 "전력 수요 급증과 기저 전원 안정화를 위해 신규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 여부를 전문가 의견과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12차 전기본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폭염엔 치솟고 비 오자 뚝…빗나간 전력 수요 초안 발표를 앞두고 전력 수요 전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올여름 극심하게 요동친 전력 수요에 있다. 기후부는 지난 6월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8월 셋째 주 94.1~98.8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전력 수요는 정부 예상보다 2주 이상 빠른 8월 첫째 주부터 급등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일 전력 수요는 9만5321MW로 종전 최고치인 9만7115MW에 근접했다. 태양광 등 전력시장 밖에서 공급된 전력까지 고려한 총수요는 10만4394MW로 추산돼 종전 최고치인 10만4215MW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반대로 둘째 주에는 이른바 '입추 매직'과 국지성 호우 등이 겹치면서 전력 수요가 8만MW대로 떨어졌다. 당초 전망보다 10GW가량 낮은 수준이다. 불과 일주일 사이 전력 수요가 크게 출렁이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과 날씨의 불확실성이 전력 수요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AI·반도체까지 가세…두 달 만에 다시 짜는 수요 전망 산업 부문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정부는 앞서 12차 전기본 잠정안에서 2040년 전력소비량 목표수요를 657.6TWh, 상향 시나리오에서는 694.1TWh로 전망했다. 최대전력 목표수요는 각각 131.8GW와 138.2GW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후 3대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AI·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신규 전력 수요가 추가됐다. 정부가 불과 두 달 만에 기존 수요 전망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이유다. 기후변화로 여름철 전력 수요의 변동 폭은 커지는데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대규모 전력 소비시설까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10여 년 뒤 필요한 발전설비 규모를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반영해 기존 수요 전망 방식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추세에 크게 의존하기보다 기후와 산업 투자 등 주요 변수에 따른 다양한 가능성을 반영해 전망 체계를 정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불확실성이 큰 분야를 중심으로 복수 또는 범위형 시나리오를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과 2035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범위형 시나리오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11개 시나리오를 토대로 미국의 전력 소비가 2050년까지 연평균 0.9~1.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회미래연구원 문성호 부연구위원은 "복수 시나리오 기반 전망을 통해 수요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와 전제를 식별해 정책적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학습과 보정이 반복되는 선순환형 예측 체계로 고도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수요 부풀려 원전 확대"…과다 전망 경계론도 반대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이유로 미래 전력 수요를 지나치게 높게 잡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지난 11차 전기본 수립 과정에서도 반도체·AI 등의 전력 수요가 과도하게 반영됐고, 이를 토대로 원전 확대가 정당화됐다고 비판해 왔다. 기후환경단체 기후넥서스 이지언 대표는 지난 7월 국회 토론회에서 "2040년 전력 수요 전망 잠정치 발표 후 불과 두 달 만에 정부의 메가프로젝트로 전기본 최대 전력 수요의 20%에 달하는 추가 수요가 새롭게 제시됐다"며 "불확실한 추가 수요를 핑계로 LNG와 원전 등 전통 발전으로 회귀하는 것은 기후 목표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12차 전기본의 관건은 기후변화와 AI·반도체 등 새롭게 등장한 변수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느냐에 있다. 수요를 과소평가하면 전력 부족에 직면할 수 있고, 반대로 과도하게 잡으면 불필요한 발전설비 투자를 초래할 수 있다. 전력 수요 전망에 따라 향후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발전설비 규모가 결정되는 만큼, 어떤 숫자를 내놓느냐 못지않게 그 숫자를 어떻게 산출할 것인지가 12차 전기본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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